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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에토스 선하고 신나는 기풍.’ 

이 책은 몇가지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한다. 첫째, 실크로드 개념의 창시자인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드 폰 리히트호펜의 학문적 업적을 재평가해야한다. 지금까지는 그가 단순한 지리학자로 인식되어 왔고, 더욱이 그의 실크로드가 옛 대월지(大月氏, 현 우즈베키스탄)를 넘지 못하였다고 혹평받은 바 있었지만, 그의 대저 China’ 1(1877, pp.1~758)을 면밀히 검토하면, 이미 비단이 서쪽의 로마 문화권으로까지 건너갔음을 알게된다. 또한 그는 상업적 교류뿐아니라, 많은 인문적 요소가 비단길을 통해 동서로 오갔음을 당초부터 강조하였던 터였다.

둘째로, 흥미있는 일은 리히트호펜이 1877년 독일어의 비단길(Seiden-Strasse)을 작명한 이후, 무려 60여년이 지난 1938년에 와서야 영어의 ‘Silk-Road’란 말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리히트호펜의 수제자인 스벤 헤딘이 미국 문화잡지인 <The Rotarian>(1938, 2월호)에 실크로드 발굴에 관해 영어로 기고함으로써 탄생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실크로드(シルクロ)’의 활용이 1940년대로 알려지고 있고, 한국의 경우는 1952년 동양사학자 조좌호가 <문화사>를 집필하면서 처음으로 그 개념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셋째, 한국의 문화는 고대로부터 북방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샤마니즘에서 큰 영향을 입었는데,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정서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재확인함은 매우 중요하다. ‘신난다라는 말은 샤만의 접신상태에서 비롯된 표현으로서 신나면 규칙을 무시한다로까지 흔히 발전한다. 이 상태의 적극적인 면은 우리 예술에서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분청사기의 활달한 문양을 비롯, ‘추사체의 활기넘치는 서법에서, 또한 민화의 추상에 가까운 일탈과 강렬한 색조에서 간취되며, 현대에는 이중섭의 <황소>를 그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넷째, 이웃 일본만큼 실크로드를 이용, 자국의 문화여건과 미의식을 드높이는 계기로 삼은 나라도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6세기 중엽, 폴투갈과 스페인이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일본의 카고시마 섬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였고, 곧 종교 세력이 일본의 중심부에서 예수교를 포교함으로써 첫 성상화(=서양화)가 도입된다. 이를 계기로 양풍화(洋風畵)’와 금칠 배경의 그림을 발전시켰고, 18세기 중엽에는 화란(和蘭, 네델란드)과의 교류를 통해 란가꾸(蘭學: 화란 연구)’에 치중하며 아울러 서양화를 적극적으로 익혔다. 19세기 후반, 근대학문인 실학을 배우러 화란에 유학했던 니시 아마네(西周)는 겸해서 독일 미학을 섭렵하여 도입함으로써 1893년에는 동경대학에 미학강좌를 개설하게 된다. 나아가 그네들의 전통 미감의 유현(幽玄)’을 연구하여 미적 범주에 편입시키기까지 하였다. 타산지석의 사례라 하겠다.

작성 amiami
업데이트 2024.04.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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