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Uzbekistan  2014년 1월28일-2월4일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골든 트라이앵글’(2회 연재)


1 대수학의 아버지, 알 호레즈미의 고향, 히바
중앙아시아에서 ‘스탄’(페르시아어로 ‘땅’이란 뜻)으로 끝나는 이름의 나라들 중 우즈베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고고문화인류학자, 역사학자, 실크로드 연구자, 미술사학자 등의 탐방리스트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아시아의 중간지점에서 남동쪽으로부터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무다르야(Amu Darya, 일명 옥서스 Oxus)강을 끼고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마주보는 오아시스지역으로 고대 유목도시문명이었던 호레즘(Khorezm)의 일부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사마르칸트-부하라-히바(세 곳 모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음)는 북서인도에서 중국 신장(新疆)을 거쳐 중원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오아시스 실크로드와 또 중원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어지는 실크로드가 만나는 요충지였다. 100년 전 실크로드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으로, 단어가 처음 사용되던 당시에는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트란스옥시아나와 서북 인도로 이어지는 길을 의미했다.
 옥서스강문명은 인더스문명의 발상과 무관하지 않다.  페르시아-그레코박트리아-흉노-쿠샨-돌궐-위그르-몽골-티무르-무굴-러시아(구소련) 등으로 이어지는 변천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종교도 토속신앙, 조로아스터교, 불교 등이 순차적으로 전래되어 신앙되었으며, 9세기부터는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이 와해되면서 1990년 탄생한 신생 독립국이나 정치제제는 옛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있어, 단체가 아니고 자유여행을 하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한반도의 약 2배 크기로 인구는 약 3천만 명 정도이다. 비행기를 타고 도시들 사이를 이동하려면 수도인 타슈켄트(Tashkent)로 되돌아가 움직여야 할 만큼 여행여건이 썩 좋지 못하고, 수도에서마저도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정전이 자주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GNP $2,000미만). 30여명의 인원이 움직이고 또 겨울이라 만만한 여행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평소 존경하는 문화인류학자이자 이슬람학자인 한양대 이희수교수가 인솔해 가는 답사여행이라 무조건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추운 것은 물론이고 곧 폭설까지 내릴 줄이야.

처음에는 타슈켄트-히바-타슈켄트-부하라-샤흐리사브즈-사마르칸트-타슈켄트의 일정이었으나 폭설로 교통상황이 순조롭지 못해 버스로 이동해야 했던 샤흐리사브즈(Shakhrisabz)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곳은 티무르(Timur 1336-1405)의 고향으로 역사가 깊은 곳이지만 실제로 옛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샤흐리사브즈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기원전 3-2세기 그레코-박트리아문화의 중심이었고 기원 후 1-2세기 쿠샨제국의 불교성지가 된 테르메즈(Termez)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단체일정에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라도 가보려 했건만, 험한 산길에 눈도 오고 차편도 쉽지 않은데다, 또 카라테페(Kara-Tepe)와 파야테페(Faya-tepe) 같은 주요 불교유적지가 아프가니스탄과 접한 국경지대에 있어 위험하다고 다들 말려서 그 계획도 결국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르메즈 발굴품들을 타슈겐트의 우즈벡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첫 방문지인 히바(Khiba)는 우즈벡의 서북단, 호레즘省(Khorezm viloyat)의 고도로 이란 방향 실크로드 사막길의 관문인지라 카라반들이 필히 거쳐야 했던 곳이다. 그러나 남아 있음직한 카라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도 보이지 않았고, 고대 실크로드의 흔적이나 기원전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정은 현장과 옛길들이 안고 있는 기억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의 겨울철 매서움을 실감하면서 돌아 본 히바의 내성(Itchan Kala)은 성곽을 비롯해 건축물 전체가 기본적으로 황토벽돌 조적에 부분적으로 황토미장을 하여 사막지역의 향토색을 보인다.

모스크돔과 미나레트(minaret 첨탑) 등 군데군데의 이슬람식 채유벽돌장식이 황토색 기조에 강하고 이질적인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성곽은 수차례 보수,복원되어 이찬칼라의 초기 축성시기인 10세기의 기본 모습이 남아 있는지는 의심스러웠다. 입구에서 현대조각가 Babayan의 수작으로서, 히바가 낳은 천재 천문학자이며 수학자로 algorithm(알고리즘셈법)과 algebra(대수)라는 수학개념과 용어를 탄생시킨 알 호레즈미(al Khorezmiy, 9세기 활약)의 조상을 만났다. 사색에 잠긴 채 비스듬히 앉아 있는 이 대형조각에 압도되면서 히바의 범상치 않은 역사적 깊이를 느꼈다. 



히바의 내성, 이찬칼라. Kalta-Minor 미나레트와 Mohammed Amin Khan Madrassa 신학교건물이 보이고
멀리 최우측 성곽의 일부와 알 호레즈미의 좌상(까만 점으로 보임. 아래 사진), 그리고 대형 실크로드지도가 보인다.


 


이찬칼라 입구에 있는 대형 실크로드 지도에는, 한반도 지명으로 서울이 아니라 평양이 표기되어 있어 이곳이 북한과 더욱 가까운 나라였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나중에 부하라의 호텔 로비에서도 유사한 지도가 있는 것을 보았다). 성안은 현대적 개발이 되지 않은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많이 퇴락한 상태였다. 대부분 18-19세기의 유산이나 묘당이지만, 14세기에 기원을 둔 것들도 남아 있다. 저 유명한 미완성의 Kalta-Minor 미나레트 바로 옆에는 19세기 중엽에 히바의 통치자 Mohammed Amin Khan이 설립한 2층 구조의 대형 학교건물인 Mohammed Amin Khan Madrassa가 웅장하게 서 있다. 중앙입구와 창틀들이 이슬람식 채유벽돌과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인 이슬람 신학교로 한때 125개의 숙실(Khudjra)이 있고 260명의 학생을 수용했다고 하니 나머지 수십 곳의 작고 큰 신학교들과 함께 히바가 이슬람종교와 학문의 센터였던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이찬칼라 입구의 대형 실크로드 지도. 우즈벡인의 시각에서 본 실크로드의 모습으로 지방색이 느껴진다. 



모스크 등 중요한 기능을 한 모든 건물들이 다양한 돔식 지붕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유독 Djuma-Mosque는 중앙아시아에는 유례가 없는 평면천장의 목조구조로 아래서부터 위로 가늘고 긴 212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그 모습이 키 큰 사이프러스나무를 연상시시면서 무척 이색적이고 고식이란 느낌이 들었다. 기둥 대부분은 18-19세기경의 것들이나 이 중 21개 정도가 10-12세기 것들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호레즘 지역 특히 히바의 전형적인 식물문으로 조각되어 있으나, 어떤 기둥들은 기하학적 쿠피kufi문자(7-10세기 유행한 것으로 이라크에서 시작)나 초서체 나스흐Naskh문자(10세기 이후)의 아랍 명문과 함께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목조전통은 목재가 귀한 사막문화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외래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기둥은 테라스의 기둥이나 벽붙임 기둥 등에 한정적이나마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히바의 건축을 특징지어 온 것으로 보인다(나중에 타슈켄트의 우즈벡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유사한 기둥들이 사마라칸트와 부하라지역의 유물로 소개되어 있어 그 전통이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여기저기 조로아스터교의 화단(火壇)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상하 쌍마름모꼴 장식문이 눈에 띄어 이 지역의 민족과 종교의 변천사를 말해 주는 듯 했다.




Djuma-Mosque와 전형적 기둥문양



조로아스터교 화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단문(火壇紋) 



점심식사에 나온 맛있는 빵들은, 그때까지 야외에 여기저기 서 있는 말벌집모양의 진흙통의 용도가 궁금했었는데 그게 진흙화덕이었고 거기서 구워 내 온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이 화덕들은 바로 이희수교수가 설명하려고 했던 우즈벡민족의 공동체적 전통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는 듯 했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별로 없고, 이곳저곳 카자크식 털모자와 기념품들을 팔려고 모여 있는 장사꾼들 외에는 주민의 일상이 느껴지지 않아 스산한 분위기였다. 모두들 추위를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오들오들 떨다가 대부분 털모자를 샀다. 그 바람에 털모자 장사꾼들만 신이 났다. 나중에 중부에 위치한 부하라의 양호한 보존상태와 문화관광지로서의 품격을 보면서 이 나라가 역사적으로 투르크계가 모여 있는 서북부의 호레즘지역과 우즈벡인이 주로 살고 있는 동남부 지역 간에 빈부격차와 지역차별이 있어 거의 중앙정부의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수교수도 안타까운지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가 개입해 도움을 줄 수 없을까 물었다. 만약 히바가 한국사회에 생소한 이슬람문화의 유적지가 아니고 불교문화 유적지였다면 도울 길을 찾아볼 수 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라도 학교와 모스크를 복원하고 고대의 전통을 살려 이슬람학의 중심지로 부활시킬 수 있다면 문화콘텐츠가 풍부한 멋진 역사문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히바에서 자지 않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타슈겐트로 돌아오니 밤이 꽤 깊었다. 

타슈켄트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역사박물관을 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이런 여행에서 박물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가 항상 그랬듯이 곤란한 줄 뻔히 알면서도 시간을 좀 더 달라고 간청하였다.

 

우즈베키스탄역사박물관


 


 1-2세기 쿠샨조 왕자상
 


  3-4세기 추정 카라반 자라병



이 박물관에는 우즈벡을 대표하는 역사유물, 발굴유물이 거의 다 모여 있다. 일부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우즈베키스탄 전시’에도 왔었다. 이 여행에서 못 가본 테르메즈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대표유물들과 이슬람 진입이전의 고대유물들, 특히 중국 한나라나 흉노와 관련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어 기대 이상이었다. 

 

(좌)1-3세기스투파.테르메즈의 파야즈테페 출토    (우)1-3세기 부처상 테르메즈의 파야즈테페 출토

   


작성 AMI
업데이트 2024.03.27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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