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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에 이희수 교수(AMI상임위원)의 연구 프로젝트인 「쿠쉬나메의 신라공주」를 주제로 테헤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였다. 대회가 끝난 후, 이 교수와 함께 국립이란박물관을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나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셈이다. 내가 창립회원으로 줄곧 관여해온 중앙아시아학회가 격년으로 해외학술답사를 진행하는데 2006년 7월은 이란 전역을 대상으로 2주 동안 답사하였다. 그 때 처음으로 테헤란의 국립박물관 유물들을 비교적 자세히 조사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소장 유물의 수, 전시규모, 수준, 유물의 중요도 등의 관점에서 세계 굴지의 박물관으로 꼽힌다. 소장유물이 30만점에 달하며, 전시면적은 2만 평방미터로, 이 수치를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비교(소장유물 31만점, 면적 29만 평방미터)하면 건물은 작아도 소장품에 있어서는 대단한 규모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사시대의 형상토기에서부터 루리시탄 청동기, 페르세폴리스 유적의 발굴품, 사산 왕조(224-651) 초기의 모자이크 벽화, 유리그릇, 은제 그릇 등 찬란했던 이란의 역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물들의 태반이 실크로드를 통해 동방으로 전파된 것들이어서 실크로드 미술사의 관점에서도 막중한 의의와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여기에 소개하려는 작품은 전시관람 도중 새롭게 내 눈을 끈 유물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라 이 발견에 내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사발 형태의 사산조 <은제 그릇>인데, 마무리 방식이 좀 특이하여, 이 교수와 함께 진열장 앞에 서서 그 그릇을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토론을 했다. 나중에 부대자료를 첨가하여 한편의 논문을 쓰려고 아껴두고 있던 자료인데, 얼마 전 이 교수로 부터 그 때 그 작품을 왜 아직까지 소개를 하지 않느냐는 힐문을 받게 되자 부족하나마 우선 간단한 소개글이라도 쓰기로 마음먹었다. 
   


국립이란박물관에 전시된 사산조 은제그릇과 그 옆의 전시라벨 


알려져 있듯이 사산조의 은기들은 대부분이 외수용으로 제작된 것들로 중국의 당대 황실에서도 귀히 여길 정도로 정교한 제작 솜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제왕사냥도’를 표현한 은제접시들이 유명한데, 그릇의 외면은 타출법으로 시문하고, 내면에는 편편한 은판을 덧대어 전두리에서 깔끔하게 외면과 내면을 접합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릇 내면의 기능성이 완벽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은제 잔, 5세기, 황남대총북분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사산조 은제그릇과 관련하여  신라의 황남대총 출토의 <은제 잔>이 주목된다. 이 신라 은제 잔의 경우도 타출법을 이용하여 귀갑문 구획을 짓고, 그 내부를 페르시아의 풍요의 여신 아나히타(Anahita)인 듯한 인물과 짐승들로 채워넣었다. 기본적으로는 사산조의 은기 제작기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다만 그릇 내면을  ‘겉대기 기법’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여기에 관해서 금속공예사연구가인 이난영 선생은 “[불교]사리구에서 볼수 있는 각종의 사리합들은 타출기법을 이용하여 기형을 다듬고 외면을 시문 처리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중에서 특기할 것은 겉대기 기법(二枚張り技法) ―타출한 기벽의 안쪽이 울퉁불퉁한 것을 정돈하기 위하여 별도의 금속판을 붙여서 다듬는 기법― 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¹ 라고 한국 고대 금속공예의 특징을 한 심포지엄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난영 선생은 이 <은제 잔>의 국적과 관계해서 겉대기 기법이 보이지 않는 점을 근거로 신라산일 가능성을 제시했다.² 물론 나 자신도 이 지론에 동조하여 이 신라출토 잔이 신라 제품일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귀갑문 속의 인물 모티프는 페르시아의 아나히타상과 연관시킬 수 있지만 표현 방식의 ‘소박함’을 들어 신라제품일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살펴 본 대로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타출법을 구사한 페르시아 은기의 특징을 ‘겉대기 기법’에 두어 왔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테헤란 박물관의 유물로 돌아와 <은제 그릇>의 형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순서가 될 것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작품은 겉대기기법이 활용되지 않은 홑겹의 작품이다. 옆의 라벨은 이것이 사산조 때의 작품이라고 분명히 말해 준다. 그리고 엄연히 타출기법만이 보인다. 그릇 바닥의 원형구획 속에는 목에 리본을 펄럭이는 전형적인 사산조 서조(瑞鳥)가 한 마리 앉아있고, 기벽 상부에는 꽃봉오리를 가진 10개의 가쟁이로 화판형 구획을 만들었다. 하부의 원형구획과 이 화판형 구획 사이에는 점처럼 찍은 어자문(魚子文)이 조출되었다. 이 놀라운 발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앞에 어엿이 놓여있는 이 은제 그릇이 우리의 관념, 즉 사산조 은기에는 겉대기 기법이 없는 작품이 없다는 통념을 깨고 만 것이다.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감회가 오간다. 나의 이 경험은 미술사학도에게 박물관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박물관은 많은 작품을 실견하게 하고 그 경험들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게 해준다. 또한 미술사학도가 늘 명심해야 할 점은 각 작품이 다수에 의해 지배되는 포괄적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요컨대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황남대총의 <은제 잔>에 대해서 2008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개최한「신라문화와 서아시아문화」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어떤 외국학자는 박트리아 등지에서 사산조 작품을 모델로 하여 유사품이 제작되었고, 이 황남대총 잔도 그러한 것 중에 하나일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겉대기 기법’을 절대치로 상정했던 것이 택할 수 있었던 해석의 한 방법에 불과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 2014년 8월 권 영필 (AMI대표) -
   

 1. 이난영, 「신라, 고려의 금속공예」,『한국미술사의 현황 심포지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예경출판사, 1992) p.194.

 2. 권영필, 「신라인의 미의식」,『실크로드 미술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열화당, 1997) p.274, 주52.
 

작성 amiami
업데이트 2018.10.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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